[T-Vibe]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2022.05.03 03:08 광고계동향, 조회수:899
이렇게 된 이상 Provocative하게 간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글 안소현 카피라이터 | Wieden and Kennedy Tokyo


 작년 11월, 각 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되고, 20대 대통령 선거라는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희대의 막장(?) 드라마가 시작되려던 바로 그 시점, 나를 사로잡은 드라마가 한 편 있었다. 제목은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장르는 한국에선 흔히 보기 힘들다는 정치 블랙 코미디. 국내 OTT 서비스 중 하나인 웨이브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오리지널 시리즈였다. 어쩌다 문체부 장관이 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이정은(김성령)과 그녀의 남편 김성남(백현진)이 어쩌다 납치되면서 국내 정세가 급변하는 이야기였다.
 


 
 이 드라마의 존재를 나에게 알려준 건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에 잠입한 클립 하나. 클립은 다름 아닌 드라마 1회의 한 장면. ‘논문 표절 접고, 위장전입 접고’ 손병호 게임으로 청와대가 장관 후보를 정하는 장면이었다. 이렇게나 대놓고 얘기한다고? 그렇게 홀린 듯이 끌려 들어가 드라마 정주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실, 드라마의 시작 부분은 이보다 더 어수선할 수 없었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개성들은 또 어찌나 강한지. 그렇다고 이 땅의 흔한 드라마들처럼 친절하게 인물들을 설명해주려 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난데없이 카메라를 청와대와 문체부에 들이민 것 같은 그런 날 것의 느낌. 하지만 온갖 인물들이 온갖 사건들을 벌이면서 제각각 진행되던 스토리는 회가 갈수록 씨줄에 날줄이 엉키듯 하나로 모아졌다. 최대한 아껴서 보고 싶다는 마음과 다음화 재생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사이에서 갈등하며, 나는 하룻밤 사이에 12회짜리 드라마를 모두 몰아보고야 말았다. 12회 마지막 장면을 보며 나는 아, 이 드라마에 대해 뭐라도 써야 한다. 이건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사실 지난번 칼럼을 쓰며 잠시 고민했다. 첫 칼럼으로 이 드라마를 소개해보는 건 어떨까. 하지만 이내, 아, 지금은 대선 기간이지. 대통령 선거가 마무리되고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끊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써야지, 하고 미뤄두었는데 이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점입가경(?)이라고 해야 하나. 대선이 끝나자 이번에는 ‘청와대’라는 공간 자체가 엄청난 이슈로 떠올랐다. 아니, 나는 그저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려야 하나 고민도 잠시. 그래, 이 드라마를 소개하기로 했던 취지가 뭐였나. 이 드라마처럼 우리도 이렇게 도발적으로 한번 가보자는 것 아니었나. 마음을 다잡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까짓거 이렇게 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청와대로 가보자는 마음으로.
 
 코로나가 자신의 존재감을 막 드러내던 2020년 중순, 나는 이직을 했다. 새로운 회사는 위치도, 형태도, 사람도 이전 회사와 완전히 달랐지만, 만드는 광고 스타일도 참 많이 달랐다. 이전 회사에서는 주로 둥글둥글한 광고를 만들었다. 굳이 따지자면 악플보다는 무플이 더 낫다는 그런 마인드. 민감한 이야기보다는 모두가 공감할 착한 이야기. 누구도 굳이 논쟁하지 않을 만한 그런 이야기들. 제품이든 브랜드든 자신의 위치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그런 광고들을 만드는 게 주된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무디고 뭉툭하게 어떤 것도 감히 찌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듬어왔다. 파격이나 도발은 최신 유행어를 쓰거나 인기 있는 드라마를 패러디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내가 지금의 회사로 옮기고,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Provocative.’ 처음 들었을 땐 다소 당황스러웠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영어 단어였으니까. 네이버 사전은 나에게 그 뜻이 ‘도발적인’이라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도발적인 광고를 만들라고? 19금 광고 그런건가? 하지만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번 회의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했으니까. 새로운 회사에서는 누군가 불편해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원했다. 아직 누구도 감히 하지 못했던 이야기. 일부는 격하게 찬성하지만, 일부는 결사반대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해본 적 없던 생각을 하고,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이야기들. 날카롭게 가다듬어 사회의 정곡을 찌르기를 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보며 바로 그 단어가 떠올랐다. Provocative. 도발적인. 사실 선악을 나누고, 악당과 영웅을 만들면, 드라마 만들기는 한결 쉬웠을지 모른다. 착하고, 뭉툭하고, 무난한 그런 드라마가 되었을 거다. 하지만 정치에 선악이 어디 있겠는가. 이 세상에 영웅이나 악당은 뭐 그리 흔한가. 이 땅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천태만상들은 영웅도, 악당도 아닌 그저 남루하고 비루한 인간 군상들이 뒤얽혀 만들어내는 것 아니던가. 사명감보다는 오늘 하루 이른 퇴근이 목표인 공무원들, 조회 수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기자들과 유튜버들, 종교를 정치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종교인들, 그리고 표리부동과 내로남불의 화신이 되어버린 정치인과 지식인들까지. 어쩌다 장관이 된 이정은처럼, 어쩌다 장관 남편이 된 정치평론가 김성남처럼, 어쩌다 이정은을 상사로 모시게 된 늘공(늘 공무원)들처럼 모두 자신의 욕망과 생존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날카롭게 다듬은 그 날로 이 사회의 모든 면면을 들추어낸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어느 당 지지자든 공감하다가도 불편해할 포인트들이 곳곳에 있다.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일종의 모두 까기 드라마랄까. 아직 누구도 감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 누구나 찬성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그런 드라마. 흔히 볼 수 없는 새로운 드라마임에는 틀림없었다.
 
“정치를 프로레슬링에 비유하는 거, 진부하지. 그런데 이렇게 에바떠는 풍경을 일 년 만에 마주하니 그 공통점들 안 떠올릴 수가 없네. 관객이 있을 때만 싸운다는 거. 그렇게 각본이 있는 쇼라는 거. 그 쇼 아무나 하면 다친다는 거.”
 
 Provocative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어쩌면 새로움이란 건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직 말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본다.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보며, 현실에서 겪으며, 알고는 있지만, 아직 그것을 광고로, 드라마로 말할 용기가 없었던 것들 말이다. 이런 얘기를 감히 해도 되나, 하는 자기 검열을 뚫고 기어이 용기를 내서 세상 밖에 내놓은 이야기들이 새로움을 만들어가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건 아닐까.
 어쨌든, 제작진이 한 번 더 용기를 내서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시즌2로 찾아온다면 좋겠다. 그때 가선, 제목에 ‘청와대’가 빠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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