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1812
HS Ad 기사입력 2022.04.20 04:52 조회 556
 

지금으로부터 210년 전인 1812년은 러시아에 매우 뜻깊은 해입니다. 바로 황제 나폴레옹의 대군을 몰아내고 극적인 승전을 이뤄낸 해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사의 주요한 전쟁 중 하나인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바로 이 해에 벌어진 일입니다.
 
 사실 이 전쟁이 일어나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와 러시아는 동맹을 맺은 우호국 관계였습니다만, 1810년 이후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돌이킬 수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당시 러시아는 서유럽발(發) 산업화 흐름에 뒤처져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한편, 나폴레옹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에 패하자, 섬나라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경제제재 조치인 ‘대륙 봉쇄령(Continental Blockade)’을 내리게 됩니다.
 
 문제는 이 조치가 영국과 아무런 갈등이 없던 국가들의 교역도 막아버렸던 것에서 기인하는데, 러시아가 이 조치로 인해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에 당시 러시아의 황제(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대륙 봉쇄 조치를 무시하고, 영국과의 자주적 교역에 나서는 강수를 두게 됩니다. 이로 인해, 나폴레옹은 자신의 ‘명(命)’을 거역한 러시아에 대한 보복 조치로 직접 대군을 이끌고 원정에 나서게 되지요. 그리고 세계사의 한 챕터를 장식한 유명한 원정엔 프랑스 본국은 물론이고 동유럽 일대의 동맹국과 현재 독일 지역에 산재한 라인 동맹의 동맹국들까지 총동원해 무려 30만 명 이상의 대군이 편성되었습니다. 이들은 1812년 6월 러시아로 향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는 이 전쟁은 나폴레옹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습니다. 이 원정으로 인해 전 유럽을 호령하던 ‘황제’ 나폴레옹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은 그의 군대는 이후 벌어진 또 다른 전쟁에서도 잇따라 패배하며 결국 나폴레옹은 유럽의 패권을 내려놓게 되지요.
 
 그리고 이와 유사한 역사가 또 한번 러시아를 무대로 반복됩니다. 1812년 이후 정확히 129년(1941년) 뒤의 일로, 이번엔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빌런으로 등장합니다. 히틀러는 스탈린과 맺은 독소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러시아의 드넓은 영토와 석유 및 광물자원을 독차지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소련 영토로 진격합니다. 파죽의 지세로 진격하던 독일군이 소련을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의 결말 역시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히틀러의 패배로 끝났고, 이 원정의 결과로 인해 2차 세계 대전의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두 번의 침공, 두 번의 실패 
 위에서 언급한 두 번의 러시아(한 번은 러시아제국, 또 한 번은 소비에트연방) 침공은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세부의 차이는 있지만) 발단-전개-절정-결말의 서사가 일치합니다. 전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간 두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는, 세계사적 관점에서는 참으로 다행인 결말을 맺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습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호기롭게 시작한 전쟁이 이러한 결말을 맺게 된 데는 두 ‘제국’이 러시아를 침공하면서 세웠던 전략적 판단의 미스가 정확히 일치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의 군사 전력은 보잘것없으므로 최대한 빠른 시간 내 진군해 주요 도시 점령을 완료하고 항복을 받아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와 소련 모두 당대의 서유럽에 비해 산업화의 진전이 늦었고, 최신 무기를 만들 경제적, 기술적 여력이 없던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영토만 넓었지 가난한 농부들이 대다수인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전쟁의 양상은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러시아의 전력은 생각보다 강했고, 국가의 수장은 항복하거나 도망치지 않았으며, 변변한 무기 하나 없는 러시아 민중들은 1812년엔 낫과 괭이를 들고, 1941년엔 죽은 전우의 모신나강 소총을 돌려쓰며 막강한 전력의 적을 막아낸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1812년 나폴레옹의 군대는 개별 전투에서는 승리를 이끌며 모스크바를 포함한 주요 도시들을 점령했지만, 결국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나치 독일도 마찬가지로 우월한 공중 전력과 포병 전력을 앞세워 파죽지세로 유럽 동부전선 일대에 산재한 소련의 주요 도시를 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의 강력한 저항에 발목을 묶입니다.
 
 이처럼 러시아 군대와 민중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전쟁은 당초 침략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점점 장기전 양상으로 돌입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곧 러시아의 겨울이라는 원정군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가혹한 환경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애당초 이 전쟁이 결코 장기전으로 갈리 없다는 오만함은 식량과 피복 등 군수 지원을 소홀히 한 채 장거리 원정에 나서는 치명적인 오판을 초래했고, 이는 결국 침략자들에게 궤멸적인 결과를 야기했습니다.
 
'P. I. Tchaikovsky - 1812 Overture, Op. 49'
 자,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바로 19세기와 20세기, 당대 유럽 최강의 두 ‘제국’을 상대로 승리한 러시아 자랑스러운 역사였습니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받은 고난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놀랍고, 기적적인 ‘조국 수호’의 스토리가 그들의 역사 책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이에,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러시아 민중 모두가 공유하고 축하하며, 결코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승전 기념곡을 작곡한 바 있습니다.
바로 당대 최고의 러시아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 I. Tchaikovsky)에게 위촉해 작곡한 1812년 서곡(1812 Overture, Op. 49)이 그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나폴레옹의 원정군은 모스크바를 점령하고도 끝내 항복을 받아내지 못한 채 공방전을 벌이다러시아군과 민중의 강력한 저항에 결국 퇴각하고야 맙니다. 이에 전쟁을 이끌었던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조카로 러시아 제국의 12대 황제에 등극한 알렉산드르 2세는 자신의 큰아버지가 1812년에 나폴레옹의 대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착공합니다. 그리고 성당 완공 시기에 맞추어 연주될 수 있도록 승전 기념곡 작곡을 차이콥스키에 부탁한 것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정부 발주 사업 성격의 이 곡을 단 6주 만에 완성하고, ‘1812’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기에 덧붙은 ‘서곡(Overture, 序曲)’라는 명칭의 의미는 원래 오페라 등의 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되는 음악을 뜻하는 것이지만, 통상 악장 구분이 없이 연주되는 개시와 종결이 명확한 단품(單品)의 곡을 일컫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단 6주 만에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곡이 완성되었음에도 정작 성당의 완공이 계속 지연되면서, 1812 서곡은 작곡이 완료된 지 2년여가 지나서야 모스크바에서 개최한 한 박람회의 축하공연에서 처음 연주됩니다. 첫 공연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후 미국 카네기홀 개관 기념 공연에서 연주되었을 때는 큰 호응을 얻으며, 오늘날까지도 자주 연주되는 차이콥스키의 인기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곡 전체를 들어본 적은 없어도 금관 악기와 타악기가 총동원된 종결부의 호쾌한 사운드는 여러 영화와 TVC의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되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친숙할 정도로 유명하지요.
  
 
이 곡은 차이콥스키의 작품은 물론, 클래식 역사에 기록된 그 어느 곡과도 차별화되는 매우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연주 악기로 무기인 ‘대포’가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이 곡의 작곡 의도 자체가 나폴레옹의 군대를 물리친 승전을 기념하기 것이므로, 승전을 축하하는 축포 소리를 오선지 안에 담기 위해 실제 대포를 악기로 사용하는 대담한 시도를 한 것이지요.
때문에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할 때, 콘서트홀에서 대포 소리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를 두고 연주자와 공연장 관계자 사이에 갑론을박이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위험하지만 극적 효과를 위해 실제 대포를 쏠 것인가, 아니면 김은 좀 빠지지만 안전을 위해 효과음만 재현할 것인가를 두고 말이죠. (실제 한 공연에선 공포탄 화약 연기 때문에 화재경보기가 작동해서 공연 도중 스프링클러가 터지는 웃지 못할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실내에서 대포를 터뜨리는 것이 여건상 어려울 때는 베이스 드럼(큰 북)의 타격음으로 대체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이 곡을 연주할 때는 모형 또는 실제 대포를 동원해 공포탄을 터뜨리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또 그것이 작곡가의 의도를 살리고 관객의 흥을 돋우기에도 제격이겠지요.
 
 이 곡엔 또 하나의 이색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연주 전, 객석의 노약자와 임신부를 향한 경고 문구가 등장하는 유일한 곡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모형 대포에 공포탄을 터뜨린다 해도 보통의 악기 소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소리가 엄청나게 커서, 이 곡을 연주하기 전에 “대포 소리가 클 수 있으니, 노약자나 임신부는 주의를 당부한다”라는 경고 메시지를 미리 내보는 것이지요. 음반도 예외는 아니어서, 엄청난 음량으로 녹음된 몇몇 레코딩은 음반 재킷에 ‘스피커 파손 주의’라는 문구가 붙어있기도 할 정도입니다.
 
 대제국의 침략을 전 국민이 하나되어 물리친 1812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념하는 이 곡을 2022년의 오늘 다시 듣고 있노라면, 오늘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동유럽 발 전쟁 소식이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1812년이 지닌 진정한 의미가 단순히 러시아라는 한 국가의 승리가 아니라, 외세의 부당한 침략에 맞선 이들의 승리이자 정의 구현의 역사란 점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루빨리 그곳에서 종전의 소식이 들리기를, 그리고 항구적인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1812년서곡 ·  HSAd ·  HS애드 ·  광고 ·  나폴레옹 ·  아돌프히틀러 ·  인사이트 ·  차이콥스키 ·  클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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