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기준의 변화-브랜디드 콘텐츠는 있다, 없다?
2018.10.12 11:17 광고계동향, 조회수:6432
 
 #1 율(率)의 시대에서 인(人)의 시대로

성장률을 두고 설왕설래했다. 분기별 성장률을 연간 성장률로 오인 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분기별 성장률은 전년 분기와의 비교에만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충돌했고 그 뒤의 음모론이 가동되기도 했다. 통계청의 수장은 교체 되었고, 새로운 지표가 시중에 드러났다. 그러나 정작 상대적 지표 로서 성장 ‘률’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지난 연말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코리아와 KBS가 손을 잡고 기존 의 프로그램 시청률 자료에 새롭게 시청자 수를 표시한 새로운 시청 지표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별반 새로운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시 청률 자료에 전체 가구 수나 시청자 수를 산입하면 해당 프로그램 의 시청자 수는 자동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0명의 모수가 있는 상황에서 20%가 시청을 했다고 하면, 가벼운 셈만 으로도 시청자 수가 200명이라는 것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러니 시청 률을 제공하면서 시청자 수를 제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는 반론이 나올 법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 착시가 있고, 오류가 있다. 모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한다면, 동일 시청률이라고 하더라도 시청자 수는 달라진다. 앞선 예로 돌아가서 모수가 800명 으로 감소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동일 시청률 20%라고 하더라도 시청자 수는 160명으로 감소하게 된다. ‘율(率)’에 감추어진 숫자의 변화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 대목에서 닐슨코리아와 KBS가 새로운 지표 중 하나로 시청자 수 를 도입한 이유를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최근 인구 구조 변화로 가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인구는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1, 2인 가구가 늘면서 나타나는 시청 행태 변화  를 반영하기 위해서 시청자 수를 제공하기로 했다” 

과거는 공동체의 시대였다. 3~4인 가구가 지배하고 있었고, 1인 가구 는 통계에서 제외해도 될 정도로 미약했다. 그런데 최근 1인 가구가 급작스럽게 증가했다. 가구를 기반으로 시청률을 측정했던 시청률 지표로는 세태 변화를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가정 하에서는 ‘율’이란 이름으로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는 것이 부질없다.  
 
 #2 변화의 발원지, YouTube 

시대적 흐름이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다. 과거의 가장 유난스 러운 TV 조차도 시청‘률’이란 상대 평가 지표를 포기하고, 시청자 수란 절대 지표를 선택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다. 도처가 그렇다. 이런 변화의 발원지가 바로 YouTube다. YouTube 이전의 사회가 시청률이란 상대적 지표와 평균이라는 군집형 지표로 평가하고 검증했다면, YouTube 이후의 사회는 각각의 개인이 주인이 되는 1인 주체의 시대다.  

여기서부터 세상만사가 꼬이게 된다. 그동안 ‘률’의 시대에 적용했 던 문법이 쓸모가 없어졌다. 평균을 지향하고 보편성을 지향하던 모든 것들이 개개인의 특성을 반영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손쉽게 연령과 성별로 세상을 재단했던 모든 시도들이 쓸모가 없어 졌다. 20대란 연령과 여성이란 성별 키워드가 만나서 20대 여성 이란 특정 집단이 구성되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그들을 규정 짓는 특성들이 등장하고, 그 특성에 맞추어 모든 것을 표준화시킨다. 만약 특성에 적합하지 않은 사례가 등장하더라도 굳이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버린다. 어디까지나 평균적 특성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 이고, 설사 버리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386 세대니, 오렌 지족이니 용어가 생명력을 가졌다. 심지어 밀레니얼 세대니 Z 세대 니 하는 용어도 그 세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YouTube는 군집과 평균 속에 숨은 개인을 부활시켰다. 똑 같은 콘텐츠를 제공하더라도 제공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시청자도 달라졌다. 먹방이 그랬고, 뷰티 콘텐츠가 그랬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키즈 콘텐츠다. 사람도 등장하지 않고, 손과 음성만 나와서 액체 괴물을 가지고 이리저리 놀고 있는 콘텐츠에서도 좋아하는 사람들 이 갈렸다. 손의 모양이 이러이러해서 좋아하고 싫어하고, 목소리의 톤이 어떠해서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나누어졌다.

소위 평균의 소멸이고 군집의 소멸이다.
    
 #3 생존의 몸부림, 브랜디드 콘텐츠   

브랜디드 콘텐츠는 평균과 군집이 소멸하는 시대에 생존하기 위한 브랜드들의 몸부림이다. TV가 아닌 YouTube란 공간 내에서 브랜 드가 소비자를 만나기 위한 방법론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다. TV에서 는 광고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YouTube에서는 식상한 광고란 표현 대신 조금은 세련되어 보이는 ‘브랜디드’와 ‘콘텐츠’를 결합한 용어 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딜레마는 남는다. 원래 광고는 대량 생산의 산물이다. 넘쳐나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매스여야 하고 필연적으로 군집형이어야 했다. 상품의 타깃은 여전히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해 야 하고, 특정 연령을 지칭해야 한다. 대량 생산 상품의 특성이 그 러했다. 그러니 TV 광고 시대에 적용되었던 ‘20대 여성’이란 키워 드를 YouTube라고 해서 포기할 순 없다. 문제는 YouTube에서는 20대 여성이란 키워드로만 다가설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공간 속의 사람들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섬과 같은 존재들이다. 서로 소통 하지만, 서로 불통한다. 서로 의지하지만, 독립적이길 선호한다. 그러니 ‘20대 여성’이란 키워드만으로는 부족하다. 공통적인 특성은 담아낼 순 있지만, 차별을 드러낼 수는 없다. 그래서 기존의 키워드 에 선호나 기호와 같은 새로운 키워드를 추가해야 한다.

‘연령으로서의 20대, 성별로서의 여성, 그리고 다양한 선호’가 덧 붙여지면서 경우의 수가 늘어났고, 문법의 변주가 발생했다. 야구 를 좋아하는 20대 여성과 축구를 좋아하는 20대 여성을  구별해야 했고, 힙합을 좋아하면서 야구를 좋아하는 20대 여성과 발라드를 좋아하면서 축구를 좋아하는 20대 여성을 구별해야 했다. 스포츠 보다는 여행을 즐기는 20대 여성을 구별해야 했고, 국내 여행보다 는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20대 여성을 선별해야 했다. 그러자니, 여러 방법이 등장했다. 짧지만 상황별로 여러 광고를 만들어서 각각 제공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고, 여러 상황을 긴 한편의 드 라마처럼 만들어서 제공해 줄 수도 있다. 이 변주가 바로 브랜디드  콘텐츠인 셈이다. 소멸할 수 없는 키워드에 개성을 덧붙이는 작업인 셈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모두의 선호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한 방법일 터다.  

대량 생산 상품이 아닌 소량 생산 상품이라면 논의는 또 달라진다. 소량 생산 제품은 평균을 소멸시켜야 한다. 소량은 철저히 기호나 개성에 기대어 판매되는 상품이다. 이 상품을 알리는 수단으로 TV 는 적절치 못하다. TV가 지향하는 군집은 소량 생산 상품의 대상으 로 적합하지도 않고,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비용 대비 효율성이 높지 않다. 즉 새로운 광고 시장이 열렸다. 검색 광고가 등장하면서 전국 도처의 수많은 꽃집들이 광고 시장의 새로운 고객이 된 것처럼, 소량 생산 제품이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열리면서 새로운 광고 주가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소량 생산 상품이기에 상품의 총 생산액이 기존의 광고 비용을 용납할 수 없다. 따라서 철저히 가성비 를 내세울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브랜디드 콘텐츠는 신조어이면서 구어다. 상품을 소비자에 게 알린다는 의미에서 원칙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에서 구어다. 다만 광고를 접하는 공간이 다르고 다른 공간 속에서는 다른 문법이 작동 한다는 점에서 신조어다. 깜깜한 영화관에서는 압도적인 웅장함과 실내 분위기가 1분, 2분 분량의 광고에 몰입하게 만들지만, 공개된 거실의 TV에서는 15초가 고작이다. 영화와 TV란 공간에서 사람들 을 찾아가서 설득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면, YouTube란 공간은 또 다른 영역이다. 그 공간에서 광고 실험, 그것이 브랜디드 콘텐츠다. 그래서 브랜디드 콘텐츠는 특별한 것이기도,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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