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화법] 평범한 일상의 위대한 힘
2017.07.13 12:00 CHEIL WORLDWIDE, 조회수:5456

사람들은 일상을 ‘평범함’이라는 수식어로 규정하지만, 사실 삶을 추동하는 힘은 일상 속에 있다. 일상이 어떻게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 2017 칸 라이언즈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제일 세미나 <The Power of Boredom: How Ordinary Can Be Extraordinary>의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 인터뷰를 꾸며 봤다. 

나영석 PD 인터뷰_ 자연주의 익스피리언스  

Q. <1박 2일>과 <꽃보다 할배> 시리즈는 각종 미션을 수행하거나 생애 첫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나는 등 비일상적 소재를 다뤘다. 이에 비해 <삼시세끼>는 그야말로 삼시 세끼를 해 먹는 평범한 내용이다. 비일상적 코드에서 일상적 코드로 관심이 전환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영석 PD: 나는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15년 넘게 국내외 328곳을 돌아다녔다. 한마디로 여행을 엄청 많이 했다. 그런데 너무 돌아다녔는지 어느 순간 일도, 여행도 지겨워졌다. 그즈음 이우정 작가가 “이도 저도 다 싫고, 작은 시골집에서 비가 오면 빗소리나 들으면서 부침개 먹으며 만화책 보다가 잠이나 자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 순간 이거다 싶었다. 나 또한 한때는 그냥 마음 편히 놀고 먹는 삶을 꿈꾼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만약 내게 휴가가 주어진다면 뭘 할까? 아마도 사람들은 휴가를 의미 있게 지내기 위해 이런저런 재미 있고 특별한 일을 계획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재미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휴식을 원했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게 바로 <삼시세끼>다.

 

Q. <삼시세끼>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나영석 PD: 복잡하고 골치 아픈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가서 한가롭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막상 귀농귀촌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평소 그런 갈증을 어떻게 해소할까 의문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손에 잡힌 잡지 한 권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 잡지에서 보여주는 자연주의적 삶은 리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그럴 듯하게 포장된 연출이었다.

놀라운 건 사람들이 그게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본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연 속에 파묻혀 사는 ‘자연주의 라이프’가 아니라 필요할 때 힐링할 수 있는 ‘자연주의 익스피리언스’였다. <삼시세끼>는 치열하게 뭔가를 얻으려고 애쓰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놀고 먹고 자고 빈둥거리는 콘셉트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게 그런 삶 아닌가. 자연주의 익스피리언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주고 싶었다.

 

Q. <삼시세끼>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나영석 PD: 첫 번째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간 TV 예능 프로그램은 대개 경쟁 모드였다. 밖에 나가 일하고 공부하면서 늘 경쟁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데, 집에 와 쉬면서 TV에서조차 또 경쟁 프로그램을 봐야 하나. 이제는 그런 경쟁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즉 사회적 성공이 행복을 담보하는 게 아니라 내 일상에 숨통이 트이면 그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늘고 있다. 사람들이 소위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삼시세끼>는 저 정도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싶은 공감대가 있었다. 무일푼으로 산에서 얼마간 혼자 지내거나 고급 빌라를 임대해 임시로 생활해 보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반면에 <삼시세끼>를 보는 시청자들은 ‘한 발짝만 내딛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다. <삼시세끼>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판타지’로 인식된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귀농이나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을 주려고 했는데, 시청자들에겐 그것이 ‘실현 가능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나는 이걸 ‘Affordable Fantasy’라고 말한다.

 

배우 이서진 인터뷰 _ 공감의 핵심은 인위적 하모니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불협화음

Q. 처음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의가 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맨 처음 나영석 PD에게 제안이 왔을 때 완강하게 거절했다.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일었다. 게다가 나는 강직하고 무뚝뚝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왔다. 코믹한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를 즐겁게 하고 웃길 수 있겠는가.

 

Q. 그렇다면 ‘예능 대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나는 1999년 데뷔해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로 주인공을 맡아 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예능으로 더 유명해진 것 같다. 나도 그 이유가 뭘지 생각해 봤다. 일반적으로 예능 출연자들은 오버액션하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억지스러운 행동을 싫어한다. 그래서 ‘연기’를 하지 않고,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 줬다. 불만이 있으면 투덜대고, 힘들면 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런 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Q. 개인적으로 <삼시세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삼시세끼>는 언뜻 리얼 다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 치밀하게 짜여졌다. 시골에 가서 산다고 문제가 없을 리 없는데, <삼시세끼>는 그런 일상적 걱정거리를 배제한 채 평온하게 먹고 노는 장면만 편집해 내보냈다. 또한 나영석 PD는 내게 ‘하모니’가 아니라 ‘불협화음’을 원했다. 사람들은 억지로 짜맞춘 하모니보다 솔직한 불협화음에 더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방송의 재미를 위한 나 PD의 철저한 계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일기획 웨인 초이 전무 인터뷰 _ 평범한 사물에서 특별함을 끄집어 내다

Q. 광고인의 관점에서 지루함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웨인 초이 전무: 광고는 기존에 보여 주지 않았던 걸 보여 주고, 늘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지루하고 평범하고 시시했던 것들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광고인에게는 그 순간을 잘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Q. 그런 순간을 포착한 크리에이티브를 예로 든다면?

웨인 초이 전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하찮아서 사람들 관심 밖에 있는 물건이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버블랩(Bubble Wrap), 즉 ‘뽁뽁이’다. 물건 배송 시 사용되는 뽁뽁이는 역할을 다하고 나면 그냥 버려진다.

그런데 뽁뽁이를 창문에 부착하면 실내 온도가 3~4℃ 올라가고, 난방 에너지가 28% 절감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전부터 겨울에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뽁뽁이를 붙이는 집이 늘었다. 쓸모 없던 물건이 새로운 쓸모를 얻은 것이다. 이처럼 사물이 지닌 가치와 효용성은 그 사물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달려 있다. 그런 순간을 일상에서 건져 올리면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되는 것이다.

 

Q. 그렇다면 <히트텍 윈도우> 캠페인은 평범한 일상을 다르게 바라본 결과물인가?

웨인 초이 전무: 제일기획은 뽁뽁이에 착안해 난방비 걱정을 덜고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자는 취지의 CSR 캠페인을 구상했다. 그리고 이 뽁뽁이가 매개가 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았다. 최적의 브랜드는 ‘히트텍’이란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는 유니클로였다. 히트텍도 착용 시 평균 3~4℃의 보온 효과가 있다. 뽁뽁이는 집이 입는 히트텍인 셈이다.

우리는 히트텍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히트텍 윈도우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소비자들은 히트텍 윈도우를 각자 자기 집 창문에 붙였는데, 그 자체로 브랜드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히트텍 윈도우> 캠페인은 소비자들에게 무슨 거창하고 대단한 이벤트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저 뽁뽁이를 붙이는 일상적 행동을 유도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평범함은 특별함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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