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REPORT/듀나의 시네마투어]'발연기'와 '명연기' 사이
2015.10.22 09:59 INNOCEAN Worldwide, 조회수:5543

TEXT. 듀나 (SF작가, 영화평론가)


언젠가부터 꾸준히 김태희를 옹호하고 있는데, 이 배우의 연기력이 특별히 좋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그 발연기하는 배우로 습관적인 표적사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낄 뿐이다. 새로 시작한 미니 시리즈의 제작발표회 때 연기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연기력 논란에 대해 질문하고, 처음 몇 회에 잠자는 장면들만 주로 나온다고 출연료를 얼마나 받느냐는 기사를 쓰는 건 그냥 치사한 일이다. 테크닉만 따지면 김태희보다 떨어지면서도 거의 언급이 안 되는 스타 배우들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난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 역시 치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아주 쉽게 물어뜯을 수 있다면 그냥 안 하는게 낫다. 일단 재미가 없다. 잘해봤자 하이에나 무리 중 한 마리가 될 뿐이다.




김태희가 주로 외모 때문에 인기를 얻고 캐스팅되는 것이 사실이긴 한데,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 시선을 확 끄는 미모는 시청자들에게 연기만큼 영향력이 크다. 이번에 들어간 <용팔이>에서도 이 배우의 존재감은 만만치 않다. 예쁜 사람들이 처음부터 먹고 들어가는 장점이다. 잠자는 모습이 정말 예쁜 배우를 보고 연기력 위주로 캐스팅해야 하다는 주장을 미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연기 면에서도 그렇게까지 달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 배우는 감정표현력이 약한 편이지만 발성이 정확하고 이지적이다. 막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사람이 이렇게 정확한 발음을 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용팔이>는 처음부터 앞뒤 맞는 이야기와는 담을 쌓은 드라마이니 그 정도 디테일은 잊기로 하자. 하여간 지금까지 김태희 경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연기력이 아니라 그 제한된 연기력에 맞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따내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자기 영역을 아는 것은 테크닉만큼이나 중요하다.

<용팔이>가 어느 길을 걸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연애 장면이 적을수록 이 배우에게 유리할 거라는 생각은 한다. 이 배우뿐만 아니라 드라마 전체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갈 리가 없지.

배우가 어떤 잠재성을 갖고 있는지 알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발연기'라는 말에 질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기는 하나의 단어를 갖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기예가 아니다. 서툰 연기에도 서툰 연기만의 무언가가 있고 '명연기'라고 불리는 연기 중에서도 테크닉만 처발랐을 뿐 작품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엉터리 연기도 있다. 결정적으로 '발연기'를 하던 배우들이 정말 언제까지 그 수준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의 잠재성을 읽어내기에 '발연기'는 너무 작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가 김민희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로서 김민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위치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민희는 모델 출신의 발연기 전문배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2006년 <굿바이 솔로>가 전환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김민희는 갑자기 믿을 수 있는 배우가 되었고 굵직한 연기상을 거머쥐었으며 지금은 홍상수와 박찬욱의 영화 모두에 주연으로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서프라이즈> 시절의 연기를 '발연기'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 배우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완료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김민희가 주변의 다른 배우들과 100퍼센트 공정한 경쟁을 했다는 생각은 안 든다. 김민희에게는 자신의 가능성을 꽃피울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스타 파워가 있었다. 모든 배우들이 김민희처럼 운이 좋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과정 중 가치있는 배우를 한 명 얻었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최근 떠오르는 발연기의 신성은 구윤희다. 아마 여러분은 이 이름을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의 감독 양병간이 20여 년 만에 내놓은 야심작 <무서운 집>을 본 관객들은 절대로 이 이름을 잊을 수 없다. 아줌마 역 무명 여자배우 혼자 장편영화 하나를 끌어가는데 발연기도 이런 발연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까도 말하지 않았는가. 발연기는 누군가의 연기를 묘사하기에 너무 작은 단어라고. 구윤희의 연기는 이를 증명하는 거의 완벽한 사례이다.

확실히 어색해 보이는 연기이긴 하다. 우리가 기준점으로 삼는 중견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귀신을 만났을 때 질러대는 영혼 없는 비명소리를 듣다보면 '장난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감독 말에 따르면 구윤희 배우는 처음엔 좀 더 정통적인 연기를 했는데, '일부러 못 만든' 영화의 콘셉트에 맞추기 위해 지금의 수준에 맞추었다고 한다.

아, 그럼 일부러 엉망으로 한 연기인가? 그것도 완벽한 설명은 안 된다. 일부러 엉망으로 연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윤희의 발연기에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감독의 통제를 받았다고 해도 그 연기의 톤은 배우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다.



타고난 발연기 배우? 그것도 아니다. 구윤희의 연기를 반복해 보다 보면 이 배우의 연기에 놀랄 만한 사실성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미래의 연구자가 21세기 초의 한국 중년 여성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지금의 영화나 드라마를 뒤적인다면 그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할 작품들은 베테랑 명배우들이 나오는 작품들이 아니라 바로 <무서운 집>이다. 구윤희의 연기는 기이하고 어색하면서도 지금의 평범한 중년여성의 행동이나 말투에 놀랄 만큼 충실하다. 무엇보다 이 연기는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

<무서운 집>을 반복해서 보면 '명연기'에 대한 회의가 점점 커져 간다. 관객들이 구윤희의 연기를 통해 이렇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재미의 반의 반도 주지 못하는 노련한 연기의 가치는 무엇인가? '발연기'와 '명연기'라는 단어, 드라마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인터넷에 쏟아지는 이런 단어들의 남발이 연기의 가치와 재미에 대해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연기는 잘한다, 못한다라는 한 줄 세우기의 평가를 넘어선 보다 입체적이고 다양한 무언가가 아닐까? 한 사람의 인생이, 역시 자신의 인생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을 통해 표출되는 과정이 과연 졸속으로 만들어낸 단어 하나나 둘 가지고 묘사되고 평가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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