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 2] 제28차 아시아광고대회(2013 AdAsia Hanoi) 개최
2013.12.12 04:31 광고계동향, 조회수:5203


Asia rules the world. We are Asia.
아시아광고대회가 처음 개최되었던 1958년. 아시아는 서구의 식민지배에서 막 벗어나는 시기였다. 국가의 기틀을 잡기에도 벅찬 시기에 일본 동경에서 첫 번째 아시아광고대회가 개최되었다. 아시아 광고산업의 발전을 위해 첫 테이프를 끊은 나라는 일본이었지만 오늘날 일본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의 충격에서 막 벗어난 일본에서 개최된 첫 행사의 참가자는 5개국 8명의 해외 참가자와 100여 명의 일본 광고인뿐이었다. 이런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도 아시아광고대회가 탄생해야만 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아시아 경제의 발전과 지역 경제권의 성장, 그리고 아시아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실현될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입에 풀칠하기도 벅찬 시대에 이미 광고인들의 인사이트는 세계경제의 미래와 그 주역이 아시아 광고산업일 것이라는 사실에 닿아 있었다.



1958년 행사 둘째 날, 인도대표 자간 N. 자이니 회장은 일본 조직위원회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고, 아시아광고계의 발전을 위한 단체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시아광고대회와 아시아광고계의 발전을 위한 비영리 단체인 아시아광고연맹의 ‘Made in Asia. We are Asia.’ 정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시아광고대회는 ‘아시아광고연맹(AFAA)’의 회원국들 중에서 순회 개최된다. 한국 역시 1984년과 2007년 두 번에 걸쳐 서울과 제주에서 개최한 적이 있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던 AdAsia 2013 Hanoi, 그리고 범상치 않은 베트남. 베트남은 80년대 후반 ‘도이모이(개혁개방)’정책을 펴면서 아시아에서도 유래가 드문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중간 중간 세계적 경제위기로 인해 휘청이면서도 신흥 개발국다운 성장의 기조는 계속 유지해왔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언급될 정도로 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아세안 국가들 중 최고수준으로 평가 받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은 물론 지정학적으로 아시아 거대시장인 중국, 인도, 아세안 국가의 경제허브 역할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인구의 50%가 30세 미만이며, 1억의 인구는 거대한 내수시장이자 저임 노동력의 원천이다. 이런 잠재력은 베트남을 이제는 비싸진 중국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다국적 기업의 새로운 생산기지로 자리 잡게 했다. 한국기업들 역시 베트남을 전략적 요충지로 보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3,000개를 넘어서고 있으며, 베트남 전체 수출의 20%가 현지 진출한 한국기업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베트남의 역동성을 느끼기 위해 어렵게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읽을 필요는 없다. 호텔 객실 창문으로 내다보는 풍경에서 모든 답이 보였다.

이른 새벽부터 단잠을 깨우는 출근/등교 오토바이들(베트남은 교육열이 높다)의 소리와 어느 방향을 보아도 3~4개씩 보이는 타워크레인과 공사현장이 베트남의 오늘과 미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다이나믹함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시아광고대회 역시 시작 전부터 다이나믹했다. 초강력 태풍 하이옌의 북상으로 베트남광고협회와 조직위원회, 필자가 소속된 한국광고협회를 위시한 아시아광고연맹 임원국 대표는 비상회의에 들어갔으며, 행사 개막일 새벽까지도 항공편 취소에 따른 각국 참가단의 대량 불참사태와 하노이 시내 침수, 행사장 안전문제까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야제 아침 아시아광고연맹총회를 통해 태풍 하이옌의 진로변경이 발표되면서 안도할 수 있었으나 1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필리핀 대표에게는 각 국 대표들이 애도와 위로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각국 참가단을 환영하는 전야제 만찬의 날. 각국 참가단이 속속 도착하는 가운데 행사장인 베트남 국립컨벤션센터(NCC) 앞은 각국 참가단의 전세버스들과 의전차량으로 북적였다. 참가자들이 직접 각자의 소망을 적은 행사기와 열기구가 밤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불꽃놀이로 화려한 시작을 알린 아시아광고대회 환영만찬은 베트남 국영방송의 기념콘서트 프로그램으로서 베트남 전역에 중계되었다.



아시아광고대회 개막!
이튿날 아침 9시.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이른 아침식사를 마치고 개막식의 자리를 채웠다. 아시아광고연맹 프라딥 구하 회장(인도)은 개회사에서 태풍 하이옌으로 희생된 많은 아시아인들을 위해 애도의 묵념을 제안했고, 흥분된 행사장에는 잠시 애도의 침묵이 흘렀다. 비록 자연재해의 비극이 만들어낸 것이긴 하지만 아시아 광고인으로서의 소속감과 말없는 유대의 기운은 아시아의 동질감을 느끼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어서 국제광고협회(IAA) 파리스 아부하메드 세계회장의 기조연설, 아시아광고연맹 선정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선정된 일본 덴츠 타테오 마타키 회장에 대한 공로패 시상 등이 이어졌으며, 참가국 대표들의 무대 인사로 마무리되었다.







세계광고계 GURU들의 세미나, 열띤 토론의 장
존 메리필드(John Maryfield) 구글 아태지역 크리에이티브 본부장의 발표를 시작으로 야후 등 저명한 연사들의 다양한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이후 3일간 계속된 20여회의 발표와 패널 토론은 광고/마케팅/미디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접근방법을 보여줬다.

그런 와중에도 모든 세미나에서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미래는 오늘 같지 않을 것’이란 점이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장밋빛의 미래일지 또 한번의 암흑기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위기와 기회가 반드시 함께 존재할 것이라는 변함없는 진실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퇴근을 미루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세미나에서 발표되는 내용의 거의 절반은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내용이고 나머지 반은 조금만 노력하면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비싼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면서 국제적 세미나에서 거장의 목소리를 듣는 목적은 발표자료에 쓰인 도표나 수치를 인용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거장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비교하고, 나의 잠재적 경쟁자이자 동업자인 수많은 청중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으며, 커피 브레이크의 격의 없는 토론에서 매번 의외의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회의실이 아닌 타지에서 다른 세계의 동종인들과의 무장 해제된 대화에는 언제나 고양감과 흥분이 따르기 마련이고, 이런 흥분은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기 마련이다.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을 때 그 새로운 영감이 어느새 하찮은 아이디어로 변해있을지라도 우리는 이런 경험이 또 다른 아이디어와 혁신의 자양분이 될 것임을 알기에 결코 멈추어서는 안될 것이다. 모든 것이 쉽고 빠른 요즘 시대에도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에필로그
2015년 대만 타이페이 대회와 2017년 인도네시아 발리 대회가 예정된 가운데 이번 <AdAsia 2013 Hanoi〉도 무탈하게 종료되었다. 사실 베트남은 각광 받는 신흥국가이기는 하지만 광고/미디어/마케팅 산업부문에 있어서는 아직 발전해야하는 부분이 더 많은 국가였다. 이번 행사의 준비작업 중에서도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성공적인 행사 개최를 의심하기도 했으며, 베트남 특유의 진행 방식에 실소하는 순간도 있었다. 최근의 한국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아시아광고계에서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이 핸드폰 때문인지 자동차 때문인지 아니면 K-POP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시아 광고계가 8~90년대의 일본에 대해 품었던 기대감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느덧 우리는 아시아에서 ‘일본처럼 세련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세련된 한국은 일본 같지가 않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일본은 자신의 앞가림이 더 급했던 때에도 자신보다 못한 나라와의 교류를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고 그들에게서 배울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이제는 우리가 손 내밀 차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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