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영감 ㅣ 인간의 신체를 확장하는 미디어아트
2010.09.10 02:08 HS Ad, 조회수:11878







 



글 ㅣ 백 곤 (스페이스 캔 전시팀장)



 

LED 4만 2000개로 만든 미디어캔버스

최첨단 기술 또는 사상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 역사의 흐름을 주도한다. 최근 아이폰의 발명은 기술을 넘어 인간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영화 <아바타>는 이모션 퍼포먼스 캡처라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중무장해 수많은 관객들을 매료시켰고, 이 여파는 더 나아가 냄새와 신체체험을 할 수 있는 4D 시스템을 탑재한 아이맥스영화관의 붐을 가져왔다.

아이폰의 탄생을 눈 여겨 보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손가락 감각을 무한 확장해 의식과 손과의 관계를 완벽하게 재현했기 때문이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일반 텔레비전에서도 이미지를 줄이고 늘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마치 우리가 종이에 손 글씨를 쓰다가 Delete 키를 찾는 경험을 가진 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20세기 말 디지털 혁명은 비트화된 개념을 기본으로 하는 전자환경을 일컫는데, 이 새로운 비트의 세계는 인터페이스(Interface)의 대변환을 가져왔다. 이는 인간의 감각기관과 감성을 확장해 디지털 환경과 결합시키는, 이른바 ‘사람`-`기계`-`인터페이스(Man`-`Machine`-`Interface)’로의 전환이다. 결국 디지털은 인간의 신체를 중심으로 발전·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계 전자기술의 최첨단은 무엇이 있을까? 지난해 11월 서울 스퀘어 건물 외벽에 4만 2000개의 LED로 이루어진 미디어캔버스(세로 78m`x`가로 99m)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이 캔버스에 영국 팝아티스트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작품 <걷는 사람들(Walking people)>이 상영되었다. 건물 20층 높이의 이 거대한 스크린은 미디어아트의 감상기회를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최첨단 기술은 사회·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21세기 디지털 테크놀로지 사회의 핵심쟁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호르헤 콜롬보 작 <The New Yorker> 표지 / 호르헤 콜롬보 isketch



인간 감각의 확장 넘어 사이보그 인간 탄생

<The New Yorker>라는 잡지의 커버에 주목할 만한 작품이 실렸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사진가·그래픽 디자이너인 호르헤 콜롬보(Jorge Colombo)의 회화작품이다. 그는 2009년 6월 1일 타임스퀘어에 있는 마담투소(Madame Tussaud)의 왁스 뮤지엄(Wax Museum)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아이폰의 브러시 애플리케이션으로 손가락 회화(Finger Painting)를 그렸다. 디지털 붓으로 그린 이 회화작품이 작품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같은 해 영국 출신의 화가이자 세계적인 팝아티스트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또한 아이폰 브러시 애플리케이션으로 완성한 작은 그림들을 자신의 개인전에서 아이폰으로 선보이고, 판화로 판매했다. 이러한 사례는 기술혁명이 예술가들에게 어떠한 영감을 주며, 사고와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술은 또한 인간 신체기능의 확장을 돕고 있다. 21세기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얇은 안경 하나로 너무나도 쉽게 3차원 입체영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기술은 더 이상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아주 쉬운 인터페이스, 즉 인간의 눈과 같은 감각기관의 경험을 가져다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되었는데, 이는 그만큼 인간의 신체경험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 시대 많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바로 이러한 인간의 감각과 신체의 확장을 연구한다.

이러한 인간 신체의 확장을 넘어 디지털 테크놀로지 신체로 전환시키려는 꿈을 실현시키는 시도도 있다. 오스트리아 행위예술가 스텔락(Stelarc)은 신체를 비우고 합성 피부를 만들어 신체를 테크놀로지와 생물학의 공생적 결합에 견딜 수 있게 하자고 주장했다. 가장 극단적인 논리로 신체 변형을 실천하는 그는 신체`-`기계`-`인터페이스의 미디어 총체예술작품의 확장으로 신체를 재형성하는, 이른바 ‘인간 신체의 사이보그화’를 보여주었다. 2000년 ‘서울 국제 행위 예술제(SIPAF)’에서 선보인 그의 대표작품 <제 3의 손 (Third Hand)>은 인간과 기계의 완벽한 소통을 보여주었다. ‘EVOLUTION’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장면에서, 오른손은 ‘O’, 왼손은 ‘T’, 그리고 오른손에 장착된 로봇 팔은 동시에 ‘N’을 썼다. 스텔락의 사이보그 기계신체는 인간의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인간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실현시킨 것이다.

 


음악 전시회, 전자 텔레비전_1963



스텔락(Stelarc)의 사이보그 설계도



스텔락(Stelarc)의 <4분의 1 크기의 귀> / 스텔락(Stelarc)의 <제 3의 손>

미디어아트는 ‘미디어가 인간의 신체를 확장한다’는 마샬 맥루한의 주장을 넘어
기술을 통해 신체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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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체험과 교류를 할 것인가

2008년 백남준 아트센터의 개관은 한국에서 미디어아트 분야의 전문적인 연구와 전시를 예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디어아트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아트라는 용어는 대중들에게 아직도 친숙하지 않고 어렵게 다가온다. 왜일까? 그건 바로 미디어아트의 정의가 불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미디어(Media)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매개체’를 일컫는다. 즉 글자·그림·음악 등을 전달하는 모든 것들이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수식구조와 모듈들로 중무장한 공과 분야의 복잡한 기호들이 미디어아트의 참 의미를 가로막고 있다. 과연 미디어아트란 무엇인가?

미디어아트는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그러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예술이다. 하지만 모든 예술의 감상이 그러하듯이 그 작품을 구성하는 미디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 속의 내러티브와 예술적 감흥, 즉 예술가의 혼이 가장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미디어아트의 신기하고 새로운 기술들에 현혹되어 있으면 전자 미디어라는 매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인 인공위성 제작을 실천하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은 자신의 모든 아이디어와 매뉴얼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고 있는데(‘Open-Source Satellite Project’), 그는 협업을 통한 기술과 예술의 실질적인 만남을 추구한다. 즉 어떤 방식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체험과 교류를 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샬롯 무어만과 함께한_ TV 첼로, Nam June Paik, T.V. Cello with Charlotte>
<송호준>


신체 경험을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아트는 ‘미디어가 인간의 신체를 확장한다’는 마샬 맥루한의 주장을 넘어 기술을 통해 신체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만든다’는 것은 ‘프로그램화한다’는 것인데, 이때 누구를 위해 프로그램화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그 답은 바로 신체 경험을 통해 잘 놀기를 원하는 예술가와 그 놀이에 함께 동참하기를 원하는 예술 감상자(관객)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미디어아트의 정의는 그것을 즐기고 향유하는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개념 지어질 것이다.

기술은 앞으로도 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달려갈 것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과 인간신체의 감각 사이에서 영감을 얻어 그 가능성을 확장시키기 위해 새로운 기술들을 수용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매체로 삼는 예술(미디어아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반짝거리며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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